상징마크
는 장쾌하게 뻗은 산을,
는 세계로 진출하는 동해바다를,
는 풍요로운 들판을,
는 도조인 왜가리가 미래의 발전과 번영을 향해 비상하는 모습과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을, 전체도형은 전통문양을 나타낸 마름모 형태로 웅도경북의 자긍심, 일체감과 진취성을 형상화 했다.
도목
느티나무
도조
왜가리
도화
백일홍
경상북도는 기원전부터 삼한의 하나인 진한이 자리 잡은 곳이며, 삼국을 통일하여 천년 왕조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 의 본토였다. 고려 충숙왕 원년인 1314년에 처음으로 경상도로 불리어지고, 조선조 고종 33년인 1896년 13도로 재편되면서 경상북도라 불리어졌으며, 1914년 부·군·면의 조정이 이루어지면서 오늘날의 행정구역이 형성되었다.
삼한시대의 경상북도는 옛날 한(韓) 혹은 한(韓)의 땅이었으나 그 뒤 한(韓) 또는 한(韓)은 분리되어 남부는 변한(弁韓) 또는 변진(弁辰)이 되고, 북부 즉 우리 도의 대부분은 현 경상북도 낙동강 동부의 지방과 함께 진한으로 되었다. 당시 이 지방은 북부 예(濊)(현 강원도 남부)에 접하고 서쪽은 마한(馬韓)(충남·전라지방)에 접하고 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함께 일어남에 있어서 신라가 낙동강 우안 지방과 연해를 차지한 가야(伽倻)의 고을을 멸하고 진, 변 두 곳을 병합하였으며 그 후 차차 융성하여 3국을 통일함에 이르러 현 경상북도 지방에 상, 양, 강의 3주를 두게 되었으며 우리 경북지방은 상주, 양주(지금의 양산)의 통치하에 속하였다.
고려시대네는 3주 즉 양도의 지방을 병합하여 동남도 부석사라 하고 그 후 차차 변경하여 영남, 영동 혹은 경상 진주, 경상 진능의 도로 하였으나 충숙왕 원년(1314)에 경상도라 하였다.
조선시대 1520年 낙동강을 경계로 하여 좌우 양도로 나누어졌다가 수차 양도의 분합을 하였으나 현재 경상북도는 당시의 우도의 대부분과 낙동강 유역에 잇닿은 우도의 일부를 포함한 것이다. 칙령 제98호(1895. 5. 26 공포)로 23부제 실시에 따라 대구부와 안동부를 두고 동해안 일부지방이 동래부의 관할이 되었으며 칙령 제36호(1896. 8. 4 공포)로 13도제 실시에 따라 경상북도라 칭하고 대구에 관찰사를 두어 41군을 관할하였다.
면적은 19,031㎢ (전 국토의 19.0%)로 전국 최대로서 서울의 31배에 달하며, 행정구역은 10시, 13군 2구, 14출장소로 332 읍·면·동이다.
죽령, 조령, 추풍령 등 큰령의 이남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영남으로 불려왔으며, 동쪽은 청정동해안, 북쪽은 강원, 서쪽은 충북, 전북, 남쪽은 경남, 울산과 연접해 있으며, 대구를 둘러싸고 있다. 대체로 산지가 많고 고도가 높은 편이며, 특히 북부와 서부의 높고 험준한 소백산맥이 낙동강 유역의 광활한 평야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남쪽으로는 운문산, 비슬산 등이 있어 전체적으로 거대한 분지의 지형을 가지고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 335km에 달하는 긴 해안선과 청정 동해 등 다양한 잠재력과 개발수요를 간직하고 있고, 세계적인 철강 섬유산업의 중심지로서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으며, 수도권 다음으로 많은 대학(38개)이 소재하여 풍부한 연구인력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풍부한 문화자원(전국 문화재의 20%)과 천혜의 관광자원, 지역의 높은 문화적 역량을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세계적인 문화·관광중심지로 가꾸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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