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마크
심벌마크는 "밝은 해", "푸른 산", "맑은 물"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청풍명월의 고장 충북의 이미지를 형상화하였으며, 도기의 흰색 바탕은 충북도민의 순수함과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함
도목
느티나무
도조
까치
도화
백목련
삼한 정립시대에는 마한 땅에 속하였으며, 백제가 청주·보은 일부의 중부지역을, 신라가 영동·옥천·보은 일부의 남부지역을, 그리고 고구려가 제천·단양·충주·괴산·진천 등 동북부지역을 점유하였으나, 4세기에는 백제가 충청북도 전역을 차지하였다. 고려시대 1106년에 충청도라 칭하였다. 조선시대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처음으로 충청북도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
충청북도는 대한민국의 중앙부에 위치한 내륙도이다. 충청북도는 대한민국에서 바다에 접하지 않은 유일한 내륙도이며 바다와 가장 가까운 지점인 진천군 백곡면 서단에 있는 서운산도 충청남도 아산만의 방파제까지의 거리는 무려 47km나 된다.
충청북도는 북동쪽에 태백산맥, 동쪽에 소백산맥, 북서쪽에 차령산맥으로 차단된 거대한 분지지형을 형성하고 있어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대륙성기후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쪽 경계지역은 지형이 험준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달리고 있어 강원도 지방과 같이 전작 중심의 농업경관을 나타내고 있다. 때문에 도민의 기질이 온후순박하고 충효의 정신이 탁월하였다.
최근에 와서 교통 및 정보통신의 발달과 도내의 곳곳에 대단위 공장이 건설됨에 따라 순진하면서도 강직하고 온순하면서도 진취적인 충북의 도민상이 성숙되고 있다. 조선시대에 압록강, 두만강유역의 경략이 성공되어 이들 지역이 우리의 영토로 수복되기 전 까지는 안주에서 영흥에 이르는 선이 국경선이었을 때 우리나라의 중심지점은 충주였다. 즉, 충주에서 안주까지 360km, 영흥까지 300km, 부산포까지 250km, 목포까지는 280km가 된다. 그래서 중원 또는 충주라는 지명이 자랑으로 쓰이고 있으며 한반도의 중앙을 상징하는 국보 6호로 지정된 중앙탑이 충주시 가금면에 위치하고 있다.
충청북도는 독자적인 특성을 유지하면서 주변지역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충청북도는 북쪽은 경기도와 강원도, 동쪽은 경상북도, 서쪽은 충청남도, 남쪽은 전라북도사이에 자연적 경계를 이루고 있어 주위와 독립된 지리구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충청남도와의 사이는 금강을 경계로 하고 있어 옛 부터 금강은 동서 간에 교착을 촉진시키는 구실을 하여 광활한 평야를 관개하였으므로 충청북도와 분리하는 작용은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두 도는 동질의 지역성을 형성하여 왔다.
충청남·북 양도를 동일의 지리구로 보았을 때 청주, 공주, 대전은 지역적으로 중심지인 동시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같은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북쪽 경기도와의 경계는 차령산맥이 가로 놓여 있으나 저산성 산지로서 교통에 큰 장애를 주지 못해 옛 부터 중부 문화권 속에서 성장 발달하였다. 충청북도의 동쪽을 가로막고 있는 소백산맥은 일찍이 백제와 신라사이의 국경선이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중부, 영남 , 호남 문화권의 분수령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1900년대초에 경부선과 중앙선철도가 개통되고 연이어 호남선철도의 완공으로 지형적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1970년 7월에 역사적인 경부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호남 영동고속도로의 준공으로 소백산맥의 장벽은 완전히 허물어져 영호남지방과는 일일생활권에 들게 되었다. '97. 4. 28 개항한 청주국제공항과 경부고속전철 개통으로 청주, 신탄진, 대전, 조치원 일원은 하나의 대단위도시권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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